짐을 쌀 것인가, 말 것인가?

필자의 주요 일과는 15년차 이상의 베테랑 경력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이직에 대한 생각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직을 결심하고 찾아오는 사람보다 막연히 답답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미팅을 청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매일의 과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한 번씩 상념에 젖는 베테랑들을 위해 어떤 경우는 이직을 추진해야 할 상황이고 어떤 경우는 이직보다 다른 솔루션을 찾아야할 상황인지를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부디, 결단과 행동으로 상념을 떨쳐 내시기를!

베테랑들이 현직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다음의 여섯 가지 중 하나이다.

1. 회사의 경영성과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
2. 상사와 너무 안 맞을 때
3. 외부 인력들이 별 이유없이 좋은 조건으로 영입되어 들어올 때
4. 현재의 처우 조건이 나쁘다고 느낄 때 
5. 현 조직에 오래 근무하여 정체 혹은 도태되는 기분이 들 때
6. 현재의 직무에서 더 확장된 역할을 맡고 싶을 때

그럼 이제 각각의 경우들이 과연 이직을 해야 할 상황일 지 하나씩 판단해보자.
물론, 시장에서 중요한 건 당신의 이직 결심이 아닌, 당신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우선은 개인들의 입장에 고민하고 판단하고 그 다음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력관리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 있을 테니.
 
1. 회사의 경영성과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
오랜 기간 상황이 안 좋은 회사에 근무하는 어느 팀장이 있다. 다행히 그는 업계에서 실력으로 꽤 명망이 있어 그를 원하는 기업들이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1~2년에 한 번씩 이직을 제안할 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나 마저 나갈 수 없다.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노력해볼 생각이다."
훌륭한 사명감이다. 하지만 당신이 여염집의 가장이라면 하루라도 속히 이직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개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시니어가 될 수록 회사가 당신의 브랜드가 된다. "K사 출신이라고? 거기 일 잘 하는 사람이 있겠어?" 굉장히 자주 듣는 말이다. 실제로 상황이 나빠지는 회사에 계속 있다 보면 개인의 성과나 역량도 같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업적을 묻는 질문에, "회사 상황이 그래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라는 변명은 굉장히 매력 없게 들린다. 당장 당신의 성취업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곳으로 옮겨야 할 상황이다.

2. 상사와 너무 안 맞아서
안 맞는 상사의 사내입지가 확고하다면, 역시 짐을 쌀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다. 당신이 상사를 너무 싫어한다면 상사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력관리가 안 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조금 이르거나 적절한 시기에 업무가 확장되고 승진도 해야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상사가 싫으면 회사를 그만 뒀는데 후회가 돼요. 지금 다시 그런 일을 겪는다면 내가 그 사람을 나가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용자를 가끔 만나기도 한다. 굉장히 지략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라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실제로 그런 역사를 만든다면 당신은 앞으로 이직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어느 업종이든 바닥이 좁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 그것도 웃으며 떠나야 한다.

3. 외부 인력들이 별 이유없이 좋은 조건으로 영입될 때
별 다른 경력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보다 경력 기간도 짧은 사람들이 동료그룹이나 상사로 계속 영입된다면 당장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그건 당신의 보스가 기존 조직과 당신을 신뢰하지 않거나, 현 포지션 이상의 기회를 줄 생각이 없다는 명확한 표현이다.

4. 현재의 처우 조건이 나쁘다고 느낄 때
이런 이유로 이직을 추진했다가는 씁쓸한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꽤 크다. 어느 회사의 인사담당 임원이 지원자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가 '연봉협상'이 진짜 협상인 줄 아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신이 ‘계리사에 영어가 능통하고 보장성, 저축성 상품의 전문성을 두루 확보한 상품개발 전문가이면서 리더십이 탁월하고, 영업과의 협업이 원활하며 현직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근무하고 있는 인물'이고 기업은 당신 외에 다른 지원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라면 진짜 연봉협상이라는 것을 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로는 회사마다 밴드가 정해져 있고 특히, 임원급의 경우 연봉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직급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마다의 자존심이 있고 노조의 견제도 만만치 않아 확실한 근거나 논리 없이 직급을 올려서 이직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직만으로 연봉과 직급을 올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를 만들어 브랜드를 만드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지점장 시절의 전설적인 기록으로 부사장까지 오르거나, 본부장 시절 큰 프로젝트를 성공한 스토리로 부사장이 된 사람도 있다. 그들과 같이 당신을 대표할 성공사례를 만들거나,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드는데 집중하시라. 예를 들면, "전략적 마인드가 탁월한 영업관리자", "영업 현장을 경험한 상품개발 전문가", "B2B/B2C 전 채널에 대한 영업기획 및 실행능력의 보유자"등과 같은.

5. 현 조직에 너무 오래 근무하여 정체 혹은 도태되는 기분이 들 때
이와 같은 이유와 관련해서는 스스로 솔직한 자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알려졌으며 직원이 2만명이 넘는 회사에서 25년 간 근무한 여성 임원과 우연히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현재 회사의 핵심 과제를 이끌고 있는 그는, 29년의 조직 생활 동안 한 번도 머물러 본 적이 없다 했다. 항상 스스로를 자극하고 트렌드를 연구하고 반 발짝씩 앞서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회사는 그 때마다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회사에 대해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당신은 항상 반 발짝 앞서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만약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회사가 변화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고 느꼈다면 오케이, 짐 쌀 준비를 하시라.

6. 현재의 직무에서 더 확장된 역할을 맡고 싶을 때
베테랑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포인트이다.  하지만 맡아보지 않은 업무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회사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케이스가 아주 없지는 않다. COO산하의 핵심 업무를 IT로 보고 언더라이팅은 적당히 운영되면 된다고 판단하는 기업들은 Head of IT출신을 COO로 선임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외부 인재 채용은 포지션의 모든 업무 영역을 두루 경험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현재 GA채널 담당인데 영업총괄직을 목표를 두고 있다면 과거 어느 시점에 전속채널에서 관리자급 이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만약 없다면 현직에서 전속으로 보직을 옮겨 경험을 만들어 구색을 갖추고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직무를 바꾸고 싶은 경우에도 일단 현 회사 내에서 보직 변경을 신청하여 경력을 쌓고 그 다음에 이직을 고려해야 한다. 회사도 바꾸고 직무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이 외부에서 특정 분야의 인재를 영입할 때는 해당 분야에서 선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에서 그 업무를 담당한 인력을 대상으로 한다. 즉, 당신이 담당해온 업무의 연장선 상에서만 이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두에도 말했듯, 짐을 싼다고 바로 어디로 옮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보도 수집해야 하고 경쟁력도 강화해야 한다. 더욱이, 개인의 역량보다 이직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는 바로 타이밍이다. 당신이 이직을 원하는 시점과 기업이 딱 당신 같은 사람을 찾는 타이밍이 맞아 떨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 만약, 짐을 싸는 것으로 결심했다면 당신이 이제부터 해야 일은 무엇일까? 언제 일지 모를 타이밍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소영대표  sylee@rnrpartner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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