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정상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한다. 유로존은 지난 3월 말 ECB가 7500억 유로 규모로 긴급 양적완화를 단행한 바 있다. 이 7500억 유로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커진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부담을 메우기 위해서 국채를 발행할 것이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게 되면 가뜩이나 시중 유동성이 부족한 중에 국채, 즉 국가가 그 자금을 흡수해가는 것이다. 물론 그 돈을 여러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민간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유로존 국가들 중에는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은 국가들이 여럿 있다. 지난 2011년 유로존 위기 당시 PIIGS국가들이라는 오명을 썼던 나라들이 대표적이고 그 중에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들어가게 된다.

지금 이탈리아는 상당히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직격탄을 맞았고,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정책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당연히 국채 발행이 많아질 것이며 이탈리아는 채권 시장에 국채 물량을 많이 쏟아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국채 금리가 튀어오르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힘든데 국채 금리까지 튀어올라가게 되면 이탈리아 가계나 기업들은 더욱 힘겨워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ECB가 나서 국채를 사들이게 된다. ECB라는 큰 손이 이탈리아 국채를 사주게 되면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채 금리의 과도한 상승을 막아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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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가 이러한 큰 규모로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지난 3월 시장이 어수선하던 그 때의 레벨로 돌아왔다. 돌려 말하면 ECB가 이정도의 긴급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하늘로 튀어올라갔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힘겨움이 계속되기 때문에 돈 퍼붓는데도 금리가 계속 위로 튀려고만 하는 거이다.

만약 여기에 코로나 사태를 잠재우기 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추가 국채 발행을 한다면 아마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라는 개별 국가가 채권을 발행하는 게 아니라 유로존 공동으로 코로나 본드를 발행하고, 그 본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그대로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서 사용하자고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듣기에는 매우 좋아 보인다. 그러나 독일은 그렇게 되면 유로존 전체의 신용을 바탕으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형국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어차피 그 채권 발행할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당연히 독일의 신용을 가장 많이 보면서 돈을 빌려줄 것이고, 그렇게 빌린 돈의 대부분을 이탈리아가 쓰게 되는데 그런 채권을 왜 발행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말한다. 이 상황이 지속되어 이탈리아가 무너지면 유로존을 탈퇴하게 되고, 2011~12년에 나왔던 그렉시트 즉, 유로존 분열의 시나리오가 재가동되게 될 텐데 이는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며 유로존은 하나임을 강조한다.

둘 다 일리가 있어 쉽게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새벽에 유로존 정상 회담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탈리아는 국채 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 지출을 늘리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튀면서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로존 전체에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과는 전혀 판이한 모습이다. 오죽하면 ECB의 라가르드 의장이 급히 경기 부양을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며 EU에 조언을 하고 있을 정도다. 유로존에서의 보이는 공조의 균열, 상당한 불안 요인이다.

국채 발행으로 인한 부담감은 한국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번에 90조원의 추가 경기 부양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추가 국채 발행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직접적인 국채 발행 10조원 이외에도 산업은행을 통해 40조원 정도를 필요한 만큼 순차적으로(캐피탈 콜 방식)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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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자금 조달은 국채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만일 채권 시장에 국채 10조원이 발행되면 이를 사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런데 저 옆의 산업은행의 산금채가 발행 되면, 이건 국채가 아닌데…라고 하는 순간 그 채권에 딱지가 붙어있다. ‘국가보증’딱지가. 결국 유사국채라는 뉘앙스가 진하게 되고, 이것이 40조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도 국채 발행이 상당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례적인 천재지변 하에서 적자국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집행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다 빨아들여가면서 정작 자금이 급한 민간의 금융 기관 혹은 기업들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사례처럼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튀어오르면서 한국 경기를 짓눌러버릴 수도 있게 된다.

이걸 커버하는 방법으로 한은에서 기준 금리를 인하하거나, 아직은 성급하긴 하지만 극단적으로는 제한된 수준의 양적완화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Fed처럼 국채를 직매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중 금리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함께 고려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다른 케이스도 한번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한국 국채는 전세계적으로 귀한 몸이 되어 있다. 지난 3월 일정 수준 굴욕을 겪었지만 안전 자산 취급을 받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로존 국가들의 튼튼한 국채들이 유럽 재정 위기 이후 무너지면서 시중에 유동성은 넘치는데 안정적인 국채를 찾기 어렵다 보니 한국 국채까지도 좋은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번에 유로존에서 언급한 불협화음이 들려오게 된다면 외국인들이 한국 국채를 사들일 동인을 일정 수준은 더 만들어 줄 수 있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뇌피셜 수준이기는 하나, 외국인들의 한국 국채 선호를 조금 더 높여주는 그런 요인이 충분히 될 수 있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한은이 적극적인 금리 인하와 시중 금리 안정화를 위한 의지를 나타내고, 외국인들의 국채 매수세가 조금 더 강해진다면, 또한 국채 발행이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시점이 적절히 나눠지게 된다면 한국 국채 시장의 심각한 금리 불안은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 오건영> 신한금융그룹 신한AI 자분분석팀장
※4월 24일 금융시장에 대한 페이스북에 기고한 글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상기 내용은 참고용으로, 투자 손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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